까리용 - 죽은 자에게 부르는 노래

*참고 - 까리용이란 기자들이 쓰는 칼럼 형식의 글입니다.

작년 이맘때 한 번 썼던 까리용. 그땐 정기자 로테이션으로 썼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부장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이자 무언가 권한스러운 글로 바뀌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정기자인 내가 덥썩 받아서 쓰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물론 부장들이 모두 기사쓰니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야 뭐 아무생각없이 받았으니 아무생각없는 글이 나오게 되었다. 글을 쓰는데는 여섯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동연이 준비한 95%가 대체 어느정도의 임팩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꿈을 잃고 죽어가는 학생들을 단방에 회생시킬정도로 강력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신생 종교가 하나 탄생하는거다. 어쨌든 나는 소소한 비일상을 양분으로 꿈을 되찾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따지고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내 입으로 한 셈이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좀 더 유익한 내용으로 글을 쓸걸 그랬나...

내 글의 분위기는 매우 어둡다. 이번 까리용도 그 스타일을 비켜가지는 않았다. 괜시리 보고 우울할 사람은 없을까 매우 걱정된다.

아, 기획부장 조상근이라고 이름이 뜨면 재밌었을텐데, 어쩔수 없이 나는 정기자다. 이 곳에 정은 들었고 어엿한 신문사 기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내 기자로서의 능력과 나의 책임감, 그리고 내가 써낸 기사들을 보면 갈길이 멀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2년은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난 이 기간조차 잘 버텨내지 못했구나..

아, 칼럼이라고 쓴 글이 무슨 미니홈피 다이어리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내 끈은 짧구나

more..



* 다 읽은 사람이 있다면 감사를 표한다.

컨셉은 초혼, 혹은 진혼. 죽은 사람에게 아무리 돌아오라고 해봤자 오지 않는다. 난 그저 여기 죽은 사람도 있지만 죽기 직전의 사람이 있을테니, 나든 동연이든 죽은 사람보다는 일단 빈사상태에 있는 사람부터 빼내고 싶은 심정일거다 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다크포스를 주입해 주화입마상태에 빠트린다음에 한 줄기 빛을 주어 빼낸다.

사실 이미 현실적이라는 키워드의 늪에 빠져 허덕대는 사람들은 답이 없다. 완전히 빠져들었다면 뭐, 구할 수가 없겠지. 그런 사람들에게는 동연이 만든 행사가 진혼이 될 수도 있다. 허허허, 재밌구나 라면서 별 감흥없이 지나가면 말이지.


아, 간만에 밤에 글을 쓰다보니 템포가 조절이 안 된다. 아마 잘은 모르겠지만 맞춤법 띄어쓰기 여기저기 막장일게 뻔하다. 그냥 얼른 질러놓고 자고 싶다. 이건 마지막 감상.
 
해체주의적이라는 단어를 수업시간에 얼핏 들어서 찾아봤는데,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떤 개념을 갈기갈기 찢어서 나온 파편과 다른 개념을 폭파해서 굴러나온 파편이 비슷하다 라면 A는 B와 동질의 존재로세 라고 읊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게 초혼하는 것과 같다는건 단순한 은유일까? 난 나름대로 개념을 갈기갈기 찢어서 잘게 만드려고 노력했다.



이제 숙제 얼른 하고 자야겠다.

Posted by 유리달

2008/11/03 04:36 2008/11/03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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