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서울여행도, 학점을 기다렸던 시간들도.
다 그 순간에 끝이 났다.
그래요 DaviD ChurChill, 나의 예언은 틀리지 않았어요.
당신의 이름은 데이비드 처어칠
이름에 D가 두 개 C가 두 개 드물게 A가 하나 있네요.
학점을 잘 준다고 공언했던 당신이 제 성적표에 C를 박았을 때
난 집에서 다시 천덕꾸러기가 되었답니다.
BEP과목. 출석 다 하고 과제 각각 하나 빼고 노딜레이로 내고
시험 보고 플젝 다 하고.
시간 제일 많이 잡아먹었던 두 과목이 B-를 선사했다.
오히려 걱정하던 나머지 전공들은 F를 받았어도 모자랄 판에 B-를 주셨다.
난 열등생이 맞습니다.
저번학기 공부량의 2배로는 24학점의 산은 넘지 못했군요.
하지만, 나름대로 4년 이내에는 졸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의미가 있었을까 없었을까.
확실한 것은, 고등학교를 입학한 후로 4년 간
한 번도 "아 올해는 행복한 한 해였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그런 날들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하소연 할 곳은 막연하다.
문득 돌아보면 이 세상 모두가 내 적인 것만 같다.
그리하야,
2009년은 긴 푸념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푸념1
앞으로 언제까지 난 집에서 쓰레기 딱지를 붙이고 다닐까.
난 언제까지나 열등생으로 살아야할까.
내가 나의 피아노 책과 드럼스틱을 들고 집을 나설때, 난
"피아노 칠 시간 같은게 있나? 그거 다 버려라"
라는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중에서 가장 큰 실수는 이 학교를 택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면 바람 잘 날도 없었고 항상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고 피부는 막장이 되고 서럽도록 외로웠던데다가 성적은 성적대로 안나오고 인간사는 인간사대로 꼬이고 집은 집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맘놓고 발을 뻗을 수 있는 곳은 홀로 남은 기숙사의 침대 뿐이었다. 그 이외의 곳에선 난 그냥 열등생이었을 뿐이다.
한 과목만 파기 싫었다.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어서 발악했는데 결과는 이거다. 모험과 도전정신에 대한 찬사? 이런 것 따위 없었다. 그저 너는 패배자다. 너는 돈 까먹는 식충이다라는 말만 잔뜩 들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결국 대인배인척, 앞으로는 잘해라. 마지막 기회다.
공부 못하면 쓰레긴가? 나의 피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한 이야기가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반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힘이 없고 경제력도 없고 그저 나는 쓰레기라는 명제에 고개를 끄덕여야했던,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내가 쓰레기라는 명제를 강요받고, 고개를 끄덕여야했다.
공부는 곧 돈이었다.
지금 내가 내야할 돈도 공부때문이고, 앞으로 내가 벌어야 할 돈도 결국은 공부때문이다. 돈과 공부의 위치를 뒤집어 놓아도 말이 딱 떨어진다. 지금 내가 해야할 공부는 돈 때문이고, 앞으로 내가 해야할 공부도 결국 돈 때문이다. 공부에 들인 시간의 양과 질이 돈을 결정한다. 그 논리를 우리 학교는 아주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왜냐면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마저 아니라면 이 미친 세상에 중심에 있는 이 학교는 도대체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패자는 말이 없으니 닥치란다.
가끔 교수들한테서 공부도 못하는 새끼가 무슨 입방정이야 닥치고 있지 라는 뉘앙스의 말을 들을 수 있다. 특히 요즘 보직교수들이 그러한 것 같다. 그건 집에서도 사실 마찬가지고, 아마 현 정부도 비슷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음에는 다들 동의한다.
하지만 왜 열등생의 푸념과 지껄임은 사장되어야 하는가? 열등생의 푸념을 묵살할 권리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가. 그게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결국은 폭력 아닐까.
이 세계의 룰은 참 재밌다.
폭력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면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가지면 된다고들 한다. 그러면 영원히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그리고 나도 인간이라 당한 만큼 갚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다. 그래, 이 순간만큼은 다 죽여버리고 싶다. 내가 만약에 이 세계의 룰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이렇게 자라난 인간이 과연 세계의 룰을 바꿀까, 아니면 그 전에 미쳐버려서 모든 것을 망쳐놓을까.
성적이 뜨는 순간마다 살기 싫었다.
이번이 네 번째. 아마 다섯 번째를 맞게 되겠지, 아니 그러긴 싫다 물론. 다섯 번째는 없어야지 내 인생이 앞으로나마 밝아오겠지. 한 번 한 번 거듭될때마다 나를 향한 살의가 짙어져간다. 웃는 얼굴로 더 이상의 의심없이 이야기한다, 나는 이 세계에서는 정말 쓰레기에 불과한 존재임을.
내가 하기 싫어서 안하냐고?
그게 아니니까 억울한거지. 순수한 학업적인 성취? 그런게 어딨어, 그리고 다 떠나서 닥치고 일단 돈이 걸려있잖아. 나도 돈 좋다고, 당신들만 좋아하는거 아니야. 없는 돈 까먹고 싶지는 않다고. 나도 잘 알아.
푸념2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나의 10대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나의 10대는 무채색이었던 것 같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중에 하나
그 누구에게 어떠한 의미도 없는 그저 한 톨
그리고
별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래, 난 외톨이다.
받아들이는 순간 자유로워진다,
어려웠던 수학이 그랬고 처참했던 일상이 그랬듯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것을 받아들일 때
스트레스가 사라지곤 한다.
달관,
마치 그렇다. 대학 들어와서 수학의 정석을 보면 그저 웃기듯
I'm over it, 넘어서 있다는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내 지난 날
여전히 슬프고 싫지만 그저 받아들인다.
난 가장 보통의 존재, 가장 보통의 존재.
특이할 것 없고 누구나 그렇듯 마냥 평범한
20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
오랫동안 '학생'이라고 남들을 속여왔던 내 자신도 이젠 옛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20대에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30대에도 무정부주의자라면 뇌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슷한 로직인가,
이상의 눈높이가 깎여내려와 현실과 이상이 맞추어지는 순간
사람은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이젠 애도 끝이다.
지금의 내 자신에겐 더 이상 바랄게 없다
꿈도 이상도 그려왔던 낙원도 모두 옛말
현실에 파묻히자, 현실에 파묻히자,
내가 그리던 나는 있을 수 없는 것을 알았으니
그냥 현실에 파묻히자.
몇 시간 전에 깨졌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그래
그때 이미 나는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받아들이자. 난 이미 죽은 몸이다.
아니, 솔직히 더 이상 살기 힘들어
날 죽여줘.
네 손으로, 혹은 네 입으로
아직도 간신히 살아있는 날 죽여줘.
그렇게만 해준다면 난 받아들이겠어.
내 마지막 희망까지 짓밟고 부숴줘.
다시는 일어설 힘 조차 없게, 부서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새해에는 차라리,
단 한 순간도 기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외롭다.
이보다 더한 고독이 있다면 경험하기 싫다.
새해에 정말 바라는게 한 가지 있다면,
진정한 의미의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철저하게 부서지더라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까지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 만큼은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어떨까,
부서지기 직전의 사람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지
하,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부서져있다면 정말 루저가 되겠지.
2009년은 재기를 위해 노력해보려합니다.
Posted by 유리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