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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7 황지우 -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by 유리달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긴 외다리로 서있는 물새가 졸리운 옆눈으로
맹하게 바라보네,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일단 시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블로그에 글 얘기를 하면서 논술 수업이랑 전봉관 교수님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내가 따로 책을 읽거나 하지 못해서 일어난 현상으로, 문학적인 source가 될만한 것이 수업시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토록 불쌍한 중생이다. 내가..

수업시간에 이 시는 메타포 중의 메타포라고 찬사를 받았던 것 같은 기억이 났다. 교수님은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라는 시구를 설명하면서
"너넨 아직 인생의 저뭄을 겪어보지 못했다. 인생을 얼마나 겪어봤겠느냐.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 인생이 저물면서 빛이 난다" 던가. 어쨌든 인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점을 찍고 빛이 나다가 죽으면 새까만 어둠. 그래서 아름다운 황혼이 결론이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생이 저물면 저런 빛이 날 수 있을까. 나는 바다에서 일몰을 많이는 아니지만, 꽤 여러번 구경한 경험이 있다. 내가 중국에 살았을 적, 지금은 천정부지로 집값이 뛰어버린 내 옛 아파트는 18층이었다. 바닷가, 전망좋은 18층. 난 바닷노을을 멀리서, 너그럽게 보면서 자랐다. 그때야 낭만이 뭔지, 감성이 뭔지 알리가 없는 개념없는 초딩이었을 시절이었으므로 감흥이라기보다는 마냥 신기했다. 파랗던 하늘이 노오랗게 보이고, 파란색이거나 검은색이었던 물은 주황빛, 그리고 금빛으로 일렁인다. 마침내 해가 폭 하고 들어가면, 모든 것이 숨죽이는 어둠이 찾아오곤 했다.

모르겠다. 내 인생이 끝나기 직전은 저렇게나 화려할 수 있을까. 황혼이 생략되거나, 아아, 해지기 직전에 저녁노을 따윈 없이 일식일지도 몰라. 아니면 잔잔히 빛나기보다는 태양이 터져버리는건 어떨까. 조금 덜 나답다, 너무 화려하다. 내가 저랬으면 좋긴 하겠다. 이상향의 폭파로 생을 마무리 짓는 것도 유쾌하겠지.

저물면서 더 빛나는 바다를 맹하게 바라보는 물새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물새가 원래 있어야 할 곳은 어딜까 라는 생각을 제일 먼저 하게된다. 물새라지만 새라면 날아야 할 것이다. 느지막한 저녁이라서 그런지 서서 쉬고있는지, 자려는건지 어쨌든 맹한 눈이다. 졸린가보다. 그래서 나는, 권태, 무기력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새가 난다면 어딜 향해서 날아야지 시적일까, 하늘 혹은 태양은 어떨까. 그 같은 큰 이미지와 한낱 작은 물새가 비교되면서 고조되는 부분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메타포가 될 것이다. 태양을 향해 난다. 인간이 이상향을 향해 간다. 비유에 이상한 점이 있는가?

새는 하늘을 날다가 지쳤다. 그래서 어느 물가에 앉는다. 졸리다, 눈을 깜박댄다. 또 하필이면 외다리로 서있다. 자신을 지탱하는게 왜 하필이면 외다리인지, 물새 녀석들은 죄다 한 쪽 다리가 으깨부스러진 불구인가 싶다. 그래, 의지할 곳이 두 다리도 아니고 한 다리라는 정도의 시상으로 해석하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저 너머엔 자신이 도달해야할 이상향인 태양이, 황금의 빛을 머금고 일렁이고 있다. 가야 하지만 몸이 너무 피곤하다. 끔뻑인다. 그저 바라만 본다. 차마 눈을 똑바로 뜨고 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곁눈질로 흘길 뿐이다. 그리고 노래한다, 찬란한 이상향이여.


아, 찬란한 이상향이여, 그 이상향을 향해 걷는다고 믿었던 내 유년기는 어디로 가고 청소년기가 생략되려고 하는 이 시점에 내가 서있도다. 내 시각에 비치는 이상향은 나와 너무도 멀다, 배경, 힘, 능력 어느 하나 저 새보다 나은게 없구나. 넘치던 패기와 열정이 권태와 좌절, 자기합리화로 바뀌어가며 그저 현실에 순응해가는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이 시는 도대체 내가 숨쉬고 있는 이유가 뭔가에서 시작해서 에라 모르겠다로 끝나는, 매일 반복되는 뼈없는 자조를 던지게 만들며 공부하기에 아까운 시간을 의미없는 사색에 할애하게 만드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거지만), 맹하게 후려쳐지는 둔기 같은 시였다.

Posted by 유리달

2008/10/17 03:39 2008/10/17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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