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건 내 짧은 인생 중에서도 고삼 그 이듬해, 재수생이었을 적 이야기다.
99년 겨울, 나는 수능이 끝난 해방감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첫 시간인 언어영역이 끝난 후, 난 의미가 없어진 수험표를 들고 시험장을 나와,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모친은 나의 뺨을 때렸고, 부친은 나의 피아노와 왼손을 불살랐다.
그동안 들인 돈과, 잘했던 공부가 아까웠는지 안타까웠는지 부모는 나를 서울의 한 고시원에 집어넣고 재수 학원을 다니게 했다. 고시원과 학원은 전철로 몇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기력해진 나는 대낮에도 어두운 학원과 고시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 내 일상의 낙은 한강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는 역간의 철로위에 있을 때, 하루에 두 번 차창 사이로 스미는 빛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또 하나가 있다면, 지하철역에 붙은-공부에 치어 갈 수 없는-연주회 포스터를 바라보며 음악에 잠기는 일이다. 항상 어둠속에 나를 묻었던 생활이었지만, 그것들은 나의 작은 빛이 되어 내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에 비해 학원은 정말 무료했다. 항상 같은 수업을 듣는 A나, 오고가는 길목에서 자주 마주치는 B와 결국 한 마디도 나누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S대 커트라인을 맞추려면”과 같은 대화주제에 능했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지루한 레퍼토리. 그리고 학원에 나뒹구는 수많은 A와 B. 그들은 내 성적을 부러워했고, 대화에 응해주지 않는 나를 괴물, 혹은 자폐아 정도로 묘사했다.
나는 전철의 오가는 어둠 속에서 그 날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답안지 마아킹이 밀린 것은 순전히 내 오기였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길은 따로 있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당당히 펜을 내던지고 시험을 거부했던 것이다. 부모의 말을 떠올린다. 내가 뺨을 맞은 이유는 건방졌기 때문이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쳤기 때문이란다. 그을린 왼손이 아려온다.
* * *
그렇게 그날도 변함없이 전철 안에서 몇 달 전을 회상하고 있었다. 펴지지 않는 손가락들을 이리저리 움찔대며. 근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돌그룹인가, 혹은 영화배우일까. 사람들이 크게 동요했다. 소리의 진원지로 고개를 돌린다.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가 미끈한 양장을 입고 서있다. 사람들이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환호하고, 사인을 받는다. 남자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며, 자신의 음반 홍보에 힘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다른 칸으로 가려고 나를 지나쳤다.
그 옆에 조금 앳되어 보이는 여자가 함께 걷고 있었다. 그런대로 예뻤다. 톱가수와 함께 걷는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 그 순간 그 여자의 왼손이 내 얼굴 앞을 스쳐지나갔다.
부딪혔다는 표현이 옳았을까, 난 흠칫하며 얼굴을 뒤로 뺐다. 여자는 자신의 손이 무언가에 닿았다는 것을 알았는지 황급히 손을 치우고 날 쳐다보았다. 상황 파악이 됐는지 죄송하다고 말하고 남자 가수를 좇아갔다. 나는 멍하게, 여자가 있던 허공을 응시했다. 여자의 손이 있던 내 눈앞은 이내 한강 다리를 건너며 햇빛으로 채워졌다. 여자보다도, 여자의 그 왼손. 가냘프고, 길다랬던 그 왼손. 그 손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날따라 사색에 잠겨있는 나에게 A와 B가 다가와 귀찮게 굴었다. 지루한 주제로 난상 토론을 벌리려는 무리들 사이를 헤쳐 나와 고시원으로 가야 할 때다. 이제 지하철역에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또 어둠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런데 어둠이 주춤했다. 역 한 편에 붙은 포스터에 낮에 봤던 그 여자가 있었던 탓이다. 언젠가부터 붙어있었는데 큰 공연의 포스터가 아니라 지나쳤겠지. 약력이 짧은 걸로 보아 역시 나이는 어린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열아홉 살에 세계 콩쿠르를 제패한 천재 피아니스트, 그것이 그 여자의 타이틀이구나. 그 손은 역시나 피아니스트의 손이었다. 내가 간절히 원했지만 가로막혀 이룰 수 없었던 길, 그 여자는 바로 그 길을 걷고 있었다.
포스터를 한참 동안 지긋이 바라봤다. 피아노에 앉아 있는 여자와 건반에 닿아있는 손끝이 망막에 맺힌다. 그것은 나에게 진한 살의로 다가왔다. 부러워서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난 바로 저 자리에 앉아있고 싶었는데. 저렇게 행복한 인간은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된다. 아파오는 왼손을 꾹 눌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온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역으로 내려가 시계를 바라보니, 이번이 막차다. 제길, 살의는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다. 머리가 아프다. 어서 어둠속으로 들어가 쉬고 싶다.
“열차가 진입하고 있습니다.”
그래, 들어와라. 네가 들어오면 오늘 하루도 끝이 날 테다.
드르륵.
그리고 열린 전동차 문 건너편엔,
오, 이런. 어찌된 일인지 그 여자가 앉아있었다.
너무 일찍 다시 만난 것은 아닐까. 나의 살의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살의보다는 부러움에 가득 찬 소년이었다. 그 손을 다시 바라본다,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하얗고,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
이 문이 열리면 어둠 속으로 다시 묻히리라고 믿었던 나는 문이 열리고 난 후의 빛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걸어 들어가서 난간을 붙들고 멍하니 섰다. 그랬더니 이 여자, 아니 무언가 빛을 내는 그녀가 날 멀뚱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 열차 안에는 나와 그녀밖에 없다.
그녀 맞은편에 조금 거리를 두고 앉았다. 바로 앞에서 부담스럽게 시선을 교환하는 건 참 멋쩍다. 부러움이 샘솟아 올라온다. 말하고 싶었다. 나도 한때는 그녀와 같이 음악가를 꿈꾸었노라고. 지금의 그녀가 견딜 수 없이 부럽다고.
보편적인 침묵이 흘렀다. 내 머릿속은 복잡해져 갔다. 아까전의 살의는 잊은 채, 무언가, 무언가 말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래, 연주회가 언제인지나 물어보자. 무슨 곡을 연주할건지도 물어보자. 그래, 저기..
덜컹.
입을 열려는 찰나, 열차가 멈췄다. 이어 전등이 꺼진다. 여긴 전철이 설 곳이 아닌데. 바깥은 불빛이 일렁이는 한강이다. 기관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들려온다. 전깃줄이 끊겼다나 뭐라나.
나는 당황한 한편, 내심 기분이 좋았다. 무언가 말을 걸고 싶었는데 아, 하늘이 돕는구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곤 내가 최근 몇 달간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나는 별 수 없이, 한참 동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열한 시 반이 지난 깊은 밤, 어느 전철 안에 한강을 배경삼아 그녀는 앉아있었다. 한 점 당황 없이 고고하게 앉아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굴엔 화장기가 없다. 창문 뒤엔 구름에 부서져 조각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열린 창에선 찬 겨울바람이 불었다. 조금씩 날리는 머리를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바람은 이내 머리를 헝클어 놓았지만 그것 또한 개의치 않은 듯 했다. 그녀의 눈은 초점 없이 허공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 곳에 악보라도 있는 양, 전철이 오래도록 멈추어 선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는지, 그녀는 손을 허공에 올리고 그 가녀린 손가락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소녀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한 음, 한 음 퉁겨내기 시작했다. 부족하나마 음악과 인연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가 만드는 음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저 곡은 나도 쳐본 적이 있다. 저 박자에 저 건(鍵), 친근한 울림...... 아, 저것은 분명.
있을 리 없는 피아노는 전동차를 울림통삼아 정갈한 선율을 흘려냈다. 나의 눈은 부족하지만, 소녀가 음을 멋대로 넘겨짚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모든 건반을 충실하게 소화했다. 허공에서 움직이는 손짓은 조금은 장난스럽기도 했지만 음표의 울림은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연초의 찬바람은 그녀의 피아노를 거쳐 그 칼날을 감추었다. 아까 전까지도 정적이 가득했던 전차는 울림으로 가득 차 넘실댔다. 따뜻했다. 고시원 구석에 처박아둔 난로와 전기장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난 소녀에게서 반짝이는 빛을 볼 수 있었다.
전동차에 불이 들어오면서 연주는 끝났다. 나는 일어서서 ‘브라보’를 외쳐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였으나 잘 참아낸 것 같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다음 정거장에서 하늘하늘, 떠나버렸다. 나는 그저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그날 어떻게 집에 들어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집에 오는 길에 다시 한 번 포스터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나는 일주일 후로 정해져 있는 그 소녀의 공연을 보러 가기로 결심했다.
* * *
일주일은 빨랐다. 모의고사니 하는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 홀로 사색하는 중에 A와 B가 끼어드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 대신에 그들은 경쟁자가 하나 사라진 것을 축하했고, 어떻게 저 괴물이 모든 공부에서 손을 놓았는지에 대해 떠들었다. 물론 저들이 내놓는 답은 시시껄렁했다. 이 학원과 고시원, 이 어둠은 다시 빛을 발견한 내게 더 이상의 삶의 의미를 제공해주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빛은 이런 전깃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가 진 어느 날 밤, 나는 처음으로 고시원과 학원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그 빛을 다시 보기위해 가고 있었다.
다행히 공연의 막이 올라가기 전에 도착했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이 웅성댔다. 시끄러웠다. 공연이 시작할 때 즈음엔 이 사람들이 모두 닥쳐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막이 오르기 전의 무대는 어두웠다. 그리고 언젠가 보았던 그 톱가수가 무대 위로 올라와 사회를 본다. 그래, 자신의 음악적인 영감을 일깨워줘서 고맙단다. 그래, 시끄러워, 뭐가 이렇게 길어. 초조히 시계를 바라본다. 다 필요 없고, 난 그저 -
어서 빨리 그녀의 빛을 볼 수 있기를.
그렇게, 내 바람은 간결하고 명확했다.
막이 열렸다. 그녀가 나온다. 누군가를 조문하는 것 같은 검은 드레스가 바닥에 끌린다. 머리는 땋아 올려져있다. 짙은 화장, 그리고 여전히 하얗고 가녀린 손. 나의 빛인 그녀는 그렇게도 매혹적이었다.
곡은 그녀의 눈 화장만큼이나 강렬했다. 비장한 베토벤, 그의 섬광 같은 생애가 그녀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운명, 비창, 그의 비극적인 일생. 귀를 먹은 대음악가의 슬픔, 그가 일생동안 한탄했을 저주. 비참하고 강렬한 울림을 쏟아냈다. 소녀는 그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있을까, 베토벤의 일방적인 살풀이를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 걱정은 기우인 듯 했다. 음악가로서 잃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잃어가면서도 멈추지 않은 그를 그녀는 이해한 것 같았다. 그녀의 음에는 묘하게 서린 따뜻함, 그 전철에서 보여주었던 따뜻함이 있었다. 모든 것을 바치고 쓸쓸히 죽어간 거장은 그렇게 위로받고 있었다.
나도 위로받을 수 있을까, 나는 이해받을 수 있을까. 베토벤처럼 아름다운 거장도 아니고 그저 왼손이 불태워진, 너무나도 어렸던 빛을 한 순간에 도륙당한 이런 천한 인간을, 아아, 혹시 그녀는 이해할 수 있을까.
무대 위에 환하게 비추어진 조명은 유일한 빛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빛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나의 유일한 빛이기도 했다.
저 빛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소유욕이었다. 저 빛을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녀가 저 먼 어둠속이 아니라, 내 바로 옆에서 잔잔히 빛을 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생겼다.
내 사고회로는 그 순간 단선되었다.
뛰어올라갔다. 무작정 무대를 향해서 뛰었다. 마침 연주가 끝났나, 꽃다발을 들고 올라오는 몇몇 사람이 보인다. 제길, 내 시야를 막지 마. 난 그 중의 한 사람을 발판으로 삼았다. 박차고 무대 위로 올라간다. 그곳엔 아름다운 그녀가, 조금 놀란 눈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나를 기억한 듯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나의 왼손을, 나의 상처를 그녀가 단 한 번만 잡아주길 바랬다. 난 두 손을 내밀었다. 한 쪽은 붉게 그을려 오그라든, 다른 한 쪽은 그녀의 그것과 같이, 길고 가녀린, 잘 단련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아노를 쳤던 손이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녀는 그 짧은 시간에 나를 알아본 듯 했다. 그녀는 내 왼손을 잡았다.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아,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빛은 오직 나를 향하여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 이해받고 있음을 느꼈다. 나의 상처는 어루만져지고 있었다. 이대로 모든 것이 정지했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생각마저 들었다. 나에게 그녀는 가장 큰 빛이었다. 이 빛에서 멀어지기 싫었다. 손을 꼭 잡았다. 역시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 잠깐의 시간이 영원히 반복될 수 있다면.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나의 빛은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 조각나버렸다. 그들은 나를 흠씬 두들겨 팼고, 공연장 밖으로 끌려 나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니 공연 홀 앞의 소파였다. 역시나, 그런 미친놈을 사람들이 가만 놓아둘 리 없잖아. 갑자기 박차고 나간 나를 누군가 때려눕혔다. 최소한의 사회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상황이다. 그리고 내 옆에는 종이 한 장, 그 종이에는 그녀가 나에게 남긴 허용된 메시지, 사인 한 개만이 있을 뿐이었다.
서럽도록 울었다. 내 손이 불타던 날에는 무기력으로 바뀔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찼던 것을 난 기억한다. 그것은 오늘의 숭고한 슬픔과는 격이 다르게 낮은 수준의 것이다. 내가 어찌 저 아름다운 빛을 증오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떠나간 공연장의 문을 열고나오며, 내 안에 있던 모든 슬픔을 쏟아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 어루만져주었던 나의 상처, 이제는 사라져버린 나의 빛과 더불어 나의 존재 가치마저도.
지갑엔 부모가 밥은 먹고 공부하라고 준 돈이 있다. 이 돈은 그저 그들의 꿈을 위한 것이다. 난 그들의 꿈을 부정한지 오래고, 나의 빛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딱 백 번 던져보았다. 하지만 답은 한결같았다. 어디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다.
편의점에 들려 소주를 딱 열 병 샀다. 아르바이트생의 손은 소주를 집어 바코드를 찍고 돈을 건네받았다. 그 손은 역시 나의 빛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손이다. 나의 빛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손이었다. 길거리의 암흑 속에서 난 빛을 원했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둘러싸여있었다. 소주병을 까륵, 돌려서 따고 공허해진 뱃속으로 집어넣는다. 빛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하며 나의 몸은 걷고 있었다. 익숙해진 어둠으로 향해.
지하철은 끊겨있었다. 심야, 모든 빛이 사라진 극한의 어둠. 역 내의 모든 전광판은 꺼져있다. 나는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다. 걷고 또 걸었다. 전차가 없는 철로를 하염없이 걸었다. 이 길의 끝에는 내가 원래 가야 할 곳인 고시원이 있다. 내일은 그 전과 같은 일상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비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철로가 하늘을 바라보는, 한강위에 서게 되었다.
꼴사납다. 외투를 걸치고 오른손에는 술병, 왼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조를 퍼부었다. 별빛이 보이지 않는다. 낙담했다. 까륵, 또 한 병을 딴다. 들이 붓는다. 내가 매일같이 빛을 만끽했던 바로 그 장소마저 어둠으로 뒤덮여있었다. 내가 지나온 강 건너편은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았다. 저 강 너머는 수많은 남들이 살고 있다. 나를 위한 빛은 이제 없다.
이제 어디에도 나의 빛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강을 바라보며 철로 위에 걸터앉는다. 까륵, 까륵, 까륵.
아직 두서너다섯병이 남은 듯하다. 이미 자조를 퍼부울대로 퍼부어 저 남은 병들을 뱃속으로 메다꽂을 기력이 없다.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리고 구름이 걷혔다.
수많은 별들이 보인다. 그 중 단 하나, 정말이지 반짝이는 별이 눈에 들어왔다. 그 별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빛이 점점 따뜻해져온다. 빛의 이미지가 일렁인다. 나의 그녀에게서 보았던 것과 같은, 그런 따뜻한 빛을 나는 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전차가 멈추었을 때, 그녀가 냈던 그 빛. 그것은 별이었다. 먼 하늘의 별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하나의 별이, 내 옆에서 잠시 쉬어갔던 것이다.
마지막 힘을 다해 빛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자 빛은 내게서 멀어졌다. 난 지친 몸을 비틀대며 일어났다. 바스락,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빛은 한 걸음 물러난다. 빛의 이미지는 점점 뚜렷해져, 나의 별이었던 그녀의 모습으로 화한다.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작정 뛰어갔던 그날의 그녀는 모두의 별이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 고고하게 매혹적인 빛을 내는 별. 저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그럴 때마다, 나는 한 걸음씩 더 앞으로 움직였다. 조금 더 움직이면 그 빛을, 그 별을, 그녀를 가질 수만 있을 것 같았다. 그 따뜻함, 내 상처를 어루만져준 따뜻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부스럭.
갑자기 별들이, 저 하늘의 별들이 내게서 멀어져간다. 있는 힘껏, 내 두 손을 뻗는다. 난 나의 별을 잃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둠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잃어버린 빛을 찾았는데,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일순간, 나는 모든 것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멀어진 빛은 푸르게 흩어져 일렁였다. 숨이 막혀왔다. 나의 빛을 잃은 아픔은 이리도 컸던가, 그리고 고통은 몽롱해지는 의식을 꺼뜨렸다.
나는 내 생에 단 한 번 보았던 그 빛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했다. 그 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았을 걸, 이것은 내 사념의 마지막 단면이 되었다.
그 별을, 나는 끝내 잊지 못하고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