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까리용이란 기자들이 쓰는 칼럼 형식의 글입니다.
작년 이맘때 한 번 썼던 까리용. 그땐 정기자 로테이션으로 썼더랬다. 하지만 지금은 부장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이자 무언가 권한스러운 글로 바뀌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정기자인 내가 덥썩 받아서 쓰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물론 부장들이 모두 기사쓰니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야 뭐 아무생각없이 받았으니 아무생각없는 글이 나오게 되었다. 글을 쓰는데는 여섯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하지만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동연이 준비한 95%가 대체 어느정도의 임팩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꿈을 잃고 죽어가는 학생들을 단방에 회생시킬정도로 강력할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신생 종교가 하나 탄생하는거다. 어쨌든 나는 소소한 비일상을 양분으로 꿈을 되찾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따지고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내 입으로 한 셈이니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좀 더 유익한 내용으로 글을 쓸걸 그랬나...
내 글의 분위기는 매우 어둡다. 이번 까리용도 그 스타일을 비켜가지는 않았다. 괜시리 보고 우울할 사람은 없을까 매우 걱정된다.
아, 기획부장 조상근이라고 이름이 뜨면 재밌었을텐데, 어쩔수 없이 나는 정기자다. 이 곳에 정은 들었고 어엿한 신문사 기자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내 기자로서의 능력과 나의 책임감, 그리고 내가 써낸 기사들을 보면 갈길이 멀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2년은 너무 짧은 기간이지만 난 이 기간조차 잘 버텨내지 못했구나..
아, 칼럼이라고 쓴 글이 무슨 미니홈피 다이어리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역시 내 끈은 짧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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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부르는 노래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아침을 먹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일과가 끝나면 저녁을 먹는다. 숙제가 있다면 숙제를 한다. 저녁을 먹고 일과를 마무리하거나, 허기진 마음에 술을 부어 가득히 채워 몽롱한 정신으로 뜨는 해를 바라보면 똑같은 다음 날이 기다리고 있다.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한 치의 오류 없는 알고리즘 같은 흐름에 자신을 맡긴 사람들. 이런 사람들 중 ‘내 삶에서 무언가 빠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공부와 공부, 시험과 시험 사이를 살고 있는 처진 눈동자의 그대. 당신의 꿈은 어디에 있는가? 단언컨대, 꿈이 사라졌다면 당신은 죽은 것이다.
진정 공부 이외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는가? 현실적으로 살아야 하므로 학점과 커리어가 제일이라는 최면을 오늘도 걸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라. 만약 자신이 그렇다면 자신이 지금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솔직히 생각해보자. 아니면 현재의 생활에 진저리를 치며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있는가? 그래도 좋다. 하다못해 진실로 공부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좀 더 윤기 나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학기 초에 학교 여러 곳에 붙었던 자보가 학우들의 관심을 끌었던 때가 있었다. 그 자보들은 한결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했던 꿈은 무엇일까. 우린 어렸을 적부터 꿈과 진로를 동일시하도록 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누군가 지나가는 어린이에게 ‘네 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열이면 아홉은 의사, 소방관, 경찰 등의 진로 혹은 사회 계층을 뜻하는 명사를 내놓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학생, 고등학생, 심지어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꿈의 이미지를 좁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채색의 꿈이다.
우리 학교 학우들이라면 효율적이고 우수한 인생을 살아왔을 것이다. 따라서 진로에 해당하는 꿈에는 남들보다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내가 속할 계층에 국한되는 좁은 그림 너머에 드리워진 삶을 진정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낭만적인 상상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내 삶에서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기분이 내가 과학자가 된다고 해서, 기업인이 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과연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있을만한 아름다움이 남아있을까.
멋지고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싶은가? 가만히 앉아서 꿈을 찾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스로 반품했던 꿈에 낭만을 입히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일어나서 비일상을 찾아 떠나라. 물론 꽉 조여진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많은 노력을 요한다. 그러니 아직 준비가 덜 됐다면 너무 멀리서 찾으려 힘 빼지말자. 당장 학교 안에서 열리는 행사와 축제들을 놓치지 말자.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만으로도 평범하고 지루했던 생활에 자극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엔 마침 17대 동아리 연합회 ‘조연’이 무언가 일을 벌일 모양이다. 오가는 거리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고, 전시회도 열 예정이다. 기숙사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귀찮아 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조그만 투자들이 모이고 모여서 마침내 당신의 꿈에 색깔이 입혀지고,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초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혼을 부르는 의식으로, 아직 멀리 가지 않았다면 돌아오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다만 사람이 정말로 죽었다면 다시 살아날 길이 없다. 이 글 역시 수많은 죽은 자에게 깨어나라는 노래를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어쩌면 당신이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당신이 꿈에 대해 생각하는 소소한 비일상을 가졌으면 한다.
* 다 읽은 사람이 있다면 감사를 표한다.
컨셉은 초혼, 혹은 진혼. 죽은 사람에게 아무리 돌아오라고 해봤자 오지 않는다. 난 그저 여기 죽은 사람도 있지만 죽기 직전의 사람이 있을테니, 나든 동연이든 죽은 사람보다는 일단 빈사상태에 있는 사람부터 빼내고 싶은 심정일거다 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다크포스를 주입해 주화입마상태에 빠트린다음에 한 줄기 빛을 주어 빼낸다.
사실 이미 현실적이라는 키워드의 늪에 빠져 허덕대는 사람들은 답이 없다. 완전히 빠져들었다면 뭐, 구할 수가 없겠지. 그런 사람들에게는 동연이 만든 행사가 진혼이 될 수도 있다. 허허허, 재밌구나 라면서 별 감흥없이 지나가면 말이지.
아, 간만에 밤에 글을 쓰다보니 템포가 조절이 안 된다. 아마 잘은 모르겠지만 맞춤법 띄어쓰기 여기저기 막장일게 뻔하다. 그냥 얼른 질러놓고 자고 싶다. 이건 마지막 감상.
해체주의적이라는 단어를 수업시간에 얼핏 들어서 찾아봤는데,
간단하게 요약하면 어떤 개념을 갈기갈기 찢어서 나온 파편과 다른 개념을 폭파해서 굴러나온 파편이 비슷하다 라면 A는 B와 동질의 존재로세 라고 읊는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게 초혼하는 것과 같다는건 단순한 은유일까? 난 나름대로 개념을 갈기갈기 찢어서 잘게 만드려고 노력했다.
이제 숙제 얼른 하고 자야겠다.
Posted by 유리달